야외전시

레이어팝업이미지
제목이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한줄로 들어가게 해주세요.
취소
열두띠동상(1)
열두띠동상
십이지신은 쥐(子),소(丑),호랑이(寅), 토끼(卯),용(辰), 뱀(巳), 말(午),양(未),원숭이(申), 닭(酉), 개(戌), 돼지(亥)와 같은 12동물의 얼굴과 사람의 몸으로 표현한 신장으로 탑, 무덤의 호석 이나 벽화 등에 장식되기도 하였다. 십이지는 각각의 상징과 함께 전통 생활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하루를 12로 나누어 시간을 표시하기도 하였고, 12밤위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닫기버튼
수표(2)
수표
수표는 가뭄과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수위를 재는 측량 기구로, 조선 시대 세종(1418∼1450) 때 처음 만들어 한강변 바위와 청계천·마전교(馬廛橋, 후에 수표교라고 함) 등에 세웠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쉽게 썩어서 후에는 돌로 만들었다. 현재 남아 있는 수표는 영조 연간(1724∼1776)에 다시 제작하여 청계천 수표교 앞에 세운 것으로, 1960년 청계천 복개 공사 때 수표교와 함께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졌다가 1973년에 수표만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이 수표는 이것을 복제한 것이다. 수표 뒤에 눈금을 새겨 수위를 측정하는데,(문장부호 삭제) 3척 이하는 가뭄, 9척 이상은 홍수가 날 수 있음을 가리킨다.
닫기버튼
나락뒤주(3)
나락뒤주
나락뒤주는 나락을 수확하여 담아두던 저장 용구로, 정면 1칸, 측면 1칸(가로 240, 세로 134, 높이 200㎝)이다. 네 벽은 널판으로 되어있고 지붕에는 짚으로 덮는다. 바닥에도 널을 깔며 지면과는 30∼50㎝의 간격을 둔다. 전면 설주의 양쪽에 홈을 파고 여러 개의 널판을 하나씩 끼웠다 빼는 구조의 문이 있다. 장방형의 널판 중앙에는 각각 ‘一’부터 ‘五’까지 한자가 묵서된 흔적이 흐리게 남아 있다. 내부에는 널판으로 좌우를 나누어 설치되어 있는데 나락, 수수 등 곡식을 분리하기 위해서이다. 쥐가 들어가지 못하게 틈새를 밤송이 껍데기로 메웠다. 문경 서중리 민가에서 1870년부터 사용되던 것으로, 김덕묵 씨가 기증하였다.
닫기버튼
돌하르방(4)
돌하르방
제주도의 특징적인 석상(石像)으로 우석목ㆍ벅수머리ㆍ돌하르방 등으로 불리고 있으나, 현재는 돌하르방으로 통칭되고 있다. 부리부리한 큰 눈, 자루병 같은 코, 단정히 다문 입 등은 위엄과 함께 익살스러운 인상까지 자아낸다. 과거에는 성문(城門)밖에 세워두고 수호신(守護神)으로 모셨으며, 주술적(呪術的)ㆍ금표적(禁標的)기능까지도 담당했던 것으로 보아 장승의 역할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닫기버튼
정주목과 정낭(5)
정주목과 정낭
정주목은 제주도에만 있는 거승로, 대문(大門)이 없는 민가(民家)의 사립문 좌우에 돌이나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 설치하는데, 긴 나무로 만든 정낭을 걸칠 수 있도록 3~4개의 구멍을 뚫어 놓는다. 정낭은 정주목의 뚫린 구멍에 걸쳐둠으로써 마소(馬牛)의 출입 방지 및 주인의 외출을 표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주인이 잠깐 이웃집에 갈 경우에는 맨 아래 구멍에 정낭을 하나만 걸쳐두고, 한나절 집을 비울 경우에는 2개, 며칠 동안 집을 비울 때에는 맨 위에까지 모두 결쳐둔다. 제주도 민간에서는 올래직이(사립문지기:門戶守護神)라고도 한다.
닫기버튼
오촌댁(6)
오촌댁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있던 집을 영양남씨(英陽南氏) 난고종파(蘭臯宗派)로부터 2010년 기증받아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오촌댁(梧村宅)’이라 불리는 이 집은 해체 과정에서 “道光貳拾捌䄵戊申三月二日申時立柱上樑同日時”이라고 적힌 상량문이 나와 1848년에 지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가운데 마당을 가진 □자 형식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거주 공간으로는 안방, 상방, 사랑방, 문간방 등 4개의 방과 안마루(대청), 사랑마루가 있다. 그 이외에 정지, 수장 공간으로 도장방과 고방이 있다. 뒷마당에는 장독대를 두었고, 오른쪽 마당에는 디딜방앗간과 우물, 뒷간을 배치하였다. 이 지역에 지어졌던 조선 후기 중・상류 계층 전통 한옥의 한 유형을 잘 보여주는 집이다.
닫기버튼
장승동상(7)
장승동상
  • 장승동상
  • 돌탑
  • 솟대
  • 장승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또는 지역의 경계표,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대개 나무나 돌로 만들며 남녀를 상징하는 두 기가 마주보거나 나란히 서있다. 장승, 장성, 벅수, 벅시, 장신, 수살목, 돌미륵, 돌하르방 등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우리나라 중부 이북 지방은 대개 나무 장승이 많고, 대부분 사모(紗帽)를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중부 이남 지방은 돌 장승이 많고 머리에는 벙거지[戰笠]를 눌러 쓰고, 눈이 툭 튀어나온 퉁방울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돌 장승들은 전국 각 지방의 장승들 중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나타낸 대표적인 것을 선정하여 실물 크기로 똑같이 만들어 세운 것이다.
  • 돌탑은 막돌을 이용해서 원뿔대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탑으로 마을 공동체 신앙의 대상물이다. 돌탑은 주로 마을 입구에 위치하며, 장승ㆍ솟대와 더불어 마을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돌탑 안에는 때로 내장물을 넣는 경우가 있는데, 마을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숯이나 솥을 넣기도 하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오곡 단지나 밥주걱ㆍ쇠스랑을 넣는 경우도 있으며, 제액초복(除厄招福)을 위해서 특정한 부작(符作)을 넣기도 한다. 또한 풍수 비보상 세워진 돌탑에는 돌이나 청동 등으로 두꺼비와 같은 동물 형상을 만들어 넣는다. 돌은 기단부와 탑 본제, 탑 윗돌의 삼단으로 구성되며, 돌탑 윗돌의 모양이 길쭉한지 또는 둥글게 되어 있는지로 탑의 남녀 성별을 구별한다. 돌탑은 하나가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둘을 쌍으로 세우는 경우도 있다. 여기의 돌탑은 충북 옥천군 동이면 마티마을의 돌탑을 재현한 것이다.
  • 솟대는 마을 입구에 장승ㆍ돌탑 등과 함께 또는 단독으로 세워 놓음으로써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 잡식, 액(厄),살(煞)등을 막아주는 마을의 수호신간(守護神竿)이다. 나무나 돌로 된 긴 장대 윗부분에 오리 등 새 모양의 조형물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동제(洞祭)를 마치고 나면 북어, 대추 등의 제물 일부와 실타래, 백지 등을 함께 솟대에 매어 놓는데, 이는 수호신에 대한 예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뜻에서 오리 입에 지푸라기나 붕어 및 곡식을 넣은 복주머니 등을 물려 두기도 한다.
닫기버튼
효자각(8)
효자각
나라에서 허권(許權, 1847~1895)에게 내린 효자 정려(孝子旌閭, 효자에 내린 표창)를 기념한 효자비(孝子碑)의 보호 건물과 출입문.효자각은 연꽃 봉우리·용·봉황 등을 조각하고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효자문에는 ‘孝子門(효자문)’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주위에는 호랑이와 매란국죽(梅蘭菊竹)이 그려져 있다. 효자각과 효자문을 통해 효를 중시했던 당시의 사회상과 건축 기술, 공예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 건물은 허권 후손의 살림집 안에 있었으나 2005년 홍수로 손상되는 등 보존하기가 어려워 2008년 이곳으로 옮겨서 보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물에 잠겨 썩은 기둥 일부를 보수하였고 담장은 영역만을 표시해 놓았다.
닫기버튼
추억의 거리(9)
추억의 거리
  • 추억의 거리
  • 근대화연쇄점
  • 이발소
  • 다방
  • 의상실
  • 만화방
  • 1960~70년대 당시 엄마 아빠의 그 시절 가슴을 적시는 ‘추억의 거리’를 야외 전시장에 실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추억의 거리’는 박물관 동편 1,150㎡의 면적에 1960~70년대 여러 상점 건물을 설치하여 당시 일상의 생활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으로 마련된다. ‘추억의 거리’에는 근대화연쇄점, 다방, 식당, 만화방, 레코드점, 이발소, 의상실, 사진관 등 다양한 근현대 거리 모습이 재현된다. 한쪽 공간에는 추억의 목마를 설치하여 어린이들이 타볼 수 있도록 하였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국립민속박물관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추억의 명소로서 거듭날 것이다.
  •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등장하기 전 우리 일상에서 친숙한 상점의 하나는 근대화연쇄점이다. 근대화연쇄점은 1970년 대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등장한 상점이다. 당시 정부는 유통 근대화를 통해 물가안정을 모색하였다. 정부의 지원 아래 등장한 근대화 연쇄점은 구매, 배송, 광고, 선전 등을 공동으로 추진하여 경비를 절감하면서 믿을 수 있는 품질의 상품을 일정한 가격에 공급함으로써 물가안정에 기여하였다. 추억의 거리에 설치된 근대화 연쇄점은 1977년 ‘고교얄개’ 영화에 나오는 근대화연쇄점을 참고로 하여 재현하였다. 상점 안에는 당시 출시한 바나나킥, 새우깡 등 먹거리와 하이타이 같은 생활품을 전시한다.
  • 겨울이면 연탄난로를 놓고 그 철사 줄에는 수건이 걸리고, 연통에는 비누 거품을 뭉갠 흔적, 그리고 한쪽 벽에는 열댓 마리 새끼 돼지에게 젖을 먹이는 그림이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푸슈킨의 시가 걸려 있는 이발소는 그때 그 시절 남자들이 치장을 위해 들르는 유일한 곳으로 장발 등 당시 남자들의 치장도 여자들 못지않게 유행을 탔음을 알 수 있는 공간이다. 추억의 거리 이발소의 간판명은 화개이발소이다. 실재로 화개이발소는 종로구 소격동에 2007년 8월 말까지 약 50년 이상 존재했던 곳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은 2007년 이곳의 자료를 수집하였고, 이발소 의자, 이발도구, 이발소 그림 등 이발소 물품들을 전시한다.
  • 다방은 커피 판매에만 국한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다방의 간판명은 ‘약속다방’이며, 이는 그 당시 가장 많이 썼던 다방 이름 중의 하나였다. 그때의 다방은 차를 마시고 쉬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다양한 문화적 중추 활동을 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음악다방이라는 공간은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문화를 공감하고 유행을 만들어냈던 시대 흐름의 한 축이었고, LP 음악을 들었던 세대에게 있어 음악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타임머신’과도 같다.
  • 의상실의 간판명은 장미 의상실이다. 명동은 패션의 거리로 70년대 의상실의 수가 눈이 띄게 늘어났고 쇼우 윈도우에 매력 넘치는 마네킹이 등장하였으며 화려한 차림의 여인들이 유행을 만들어내며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하였다. 장미 의상실은 1977년 당시 큰 히트를 쳤던 ‘겨울여자’에 나오는 의상실 외관을 참고로 재현하였다.
  • 좁다란 가게와 불편한 나무 의자, 연탄난로. 흑백 TV 등은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달려갔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 있던 만화방 풍경이다. 단행본도 재미있지만 연작은 만화방을 가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게 했다. 후속 편이 나왔다는 말(소문)이 돌기가 무섭게 만화방 문을 밀치고 들어가 진열대에서 꺼내 볼 때 그 호기심이 충족된 짜릿함은 지금도 묽어지지 않았다. 만화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한 입씩 먹던 라면 땅과 쥐포 맛 또한 잊을 수 없다.
닫기버튼
연자방아(10)
연자방아
연자방아는 평평한 원형의 돌 위에 다시 둥근 돌을 얹어 이것을 소나 말로 돌려 곡식을 찧는 도정(搗精) 기구로 ‘연자매’, ‘돌방아’, ‘돌방애’라고도 한다. 맷돌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이는 연자방아는 윗돌과 아랫돌이 마주 돌아가는 맷돌과는 달리 축력(畜力)에 의해 윗돌과 아랫돌이 수직을 이루며 돌아감으로써 일의 능률이 맷돌에 비해 훨씬 크다. 곡식을 빻을 때는 한 사람이 소나 말의 고삐를 잡고 앞에서 몰고, 다른 사람이 그를 따르며 넉가래로 곡식을 뒤집어 준다. 연자방아를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장만해 함께 사용했는데, 기계식 방앗간이 들어오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닫기버튼
문·무인석(11)
문·무인석
문인석과 무인석은 12지신상(十二支神像)과 함께 망자(亡者)를 지키기 위해 무덤 앞에 세우는 석상(石像)으로, 각각 문관(文官, 복권을 쓰고 홀(笏)을 가지고 있음)과 무관(武官,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의 문ㆍ무인석은 중국의 영향으로 8세기부터 왕릉(王陵)에 나타난다. 시대에 따라 배치와 조각양식이 다양하게 변하는데, 이러한 문ㆍ무인석 조각 양식의 변화는 우리나라 조각사(彫刻史)의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국립민속박물관에는 현재 무인석은 없고 문인석만 전시되고 있다.
닫기버튼
인쇄소(12)
인쇄소
1930년대부터 1970대에 이르는 시기에 사용되었던 인쇄 관련 물건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활자제조기, 다양한 종류의 활자, 인쇄기, 재단기, 압축기 등이 있다. 이 중 수동 활자주조기는 1930년대 신문 출판용 활자를 주조하던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기계다. 활자는 초호부터 6호까지 다양한 크기로 한글, 한자가 고루 섞여 있다.
닫기버튼
회격모(13)
회격모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택지개발지구에서 출토된 무명(無名)의 분묘로 회격 내에서 목곽, 목관, 복식 유물, 운삽 등이 양호한 모습으로 나왔다. 회격묘는 고려 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던 석관을 대체해 조선 시대 이후에 권장되었던 장묘 문화다.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회격과 목곽은 보존 처리 과정을 거친 출토품이며, 목관과 내부의 운삽은 복제품이다.
닫기버튼
물레방앗간(14)
물레방앗간
물레방아는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의 힘을 이용하여 탈곡이나, 정미 또는 제분을 하는 도구이다. 전국적으로 분표되어 있으며, 계곡을 끼고 자리한다. 이 물레방아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 있는 것을 기준으로 제작하였다. 인공 수조에서 물을 계속 공급받아 물레의 바퀴가 돌아가면서 방아공이를 들어올렸다 내려 찧는 원리이다. 공이는 두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물레가 한 바퀴 도는 동안 번갈아 한번씩 움직인다. 집의 내부에는 방아를 찧는 공간 이외에 외양간이 있으며, 그 이외에 항아리, 지게 등 관련된 살림살이들이 놓여있다. 집은 강원도의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 주는 너와집이다.
닫기버튼